축구단 뉴스 포토갤러리 경기일정
 
 

+ 축구단 뉴스

[심층인터뷰] V4 인천현대제철의 '튀지 않는 주장' 이세은

2016.12.07

심층인터뷰

20161207

이세은은 인터뷰와 사진 촬영 경험이 많지 않다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남한테 피해주지 않는 게 최우선이에요. 저한테는 저로 인해서 다른 선수들이 힘들어지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에요."


이세은(27, 인천현대제철)은 튀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한 공격수들에게 집중될 때,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팀을 위해 헌신한다. 이세은의 존재감은 경기장에 그가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크게 느껴진다. 그것은 이세은이 오랜 팬이라고 밝힌 하대성(31, 나고야그램퍼스)과 같이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수들의 특징이다.


2009년 WK리그 출범과 함께 드래프트 1순위로 인천현대제철에 입단한 이세은은 4년 연속 준우승에 이은 4년 연속 우승을 이루기까지 꾸준히 인천현대제철의 중원에 자리해 있었다. 인천현대제철의 WK리그 통합 4연패 대기록 달성은 이세은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중원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경기를 조율하며 적재적소로 볼을 배급하는 일, 프리킥 상황에서의 번뜩이는 왼발, 거기다 1위 팀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장을 누빈다.


'절대 1강'이라 불리는 팀을 두 시즌 동안 이끌어가는 데 얼마나 큰 힘과 노력이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정작 이세은은 자신이 '부족한 주장'이라고 거듭 말하며, 공을 다른 선수들에게 돌렸다. 주장 3년차인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데 대한 자신만의 고민도 털어놨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것을 최우선이라 생각한다는 이세은. 묵묵하고 헌신적인 플레이는 그의 인생관에서 녹아나온 것이었다.


-네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두 달이 훌쩍 지났어요. 어떻게 지냈나요?

휴가 기간 동안은 집에만 있었어요. 백수 처럼요(웃음). 늦잠도 자고, TV 보고, 강아지 산책시키고 그랬어요. 보통은 시즌 마치고 여행을 가는데, 이번에는 팀 동료들이랑 가기로 했던 여행이 취소됐거든요. 집에만 있었더니 애들이 '살아있냐'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주장으로서는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작년과 비교하면 어떤 시즌이었나요?

올해는 리그 때 분위기가 작년만큼 좋지 않았어요.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비기는 경우도 많았고, 마지막까지 이천대교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하는 상황도 왔고요. 작년에는 수월했었거든요. 올해는 잘 풀리지 않다보니까 감독님도 여러 방법으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노력하셨죠. 화도 내보고, 여름에 정선으로 전지훈련 가서는 노는 분위기도 만들어보고 했어요. 결국 리그 우승을 했는데, 챔피언결정전 1차전 결과도 좋지 않았어요. 잘하고도 비겨서 분위기가 다운됐었죠. 2차전에 비야가 활개를 치며 맹활약한 덕분에(웃음) 통합 우승을 이룰 수 있었어요. 정리하자면, 작년에는 리그는 수월했지만 챔피언결정전이 어려웠고, 올해는 리그는 어려웠지만 챔피언결정전이 비교적 수월했던 거죠.


-1위 팀의 주장을 맡는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감으로 느껴질 것 같은데요?

이겨야한다는 생각은 모든 선수들이 같을 거예요. 다들 같은 정도의 압박감을 가지고 뛰어요. 주장이라서 힘들다기보다는, 이제 이 팀에서 나이로나 경험이로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부담감은 없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팀에서 데뷔해서 8년을 있었거든요.


-주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작년부터 주장을 맡고 있어요. 그전까지 부주장을 했어서 자연스럽게 맡게 됐는데, 처음 주장을 하게 됐을 때는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감독님이 딱 방향을 잡고 이끌어주시는 스타일이시다 보니, 저는 그대로 쫓아갈 수 있도록 삐져나가는 것만 잘 추스르면 되는 것 같아요. 선수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방향 제시가 잘못됐을 때 '그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하고요. 실업팀까지 와서 그런 이야기 하는 게 사실 힘들긴 해요. 그래도 선수로서 서로 통하는 게 있으니까, 가능한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요. 사실 저는 그렇게 살가운 편이 아니라 잘 못하는데, 부주장인 (임)선주가 세세하게 선수들 챙기고 하는 것들을 먼저 나서서 착실하게 잘 해줘요.


-다른 베테랑 선수들도 많은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저보다 선배인 언니가 (김)정미 언니랑 (박)시후 언니, 둘이에요. 정미 언니는 맏언니로서 팀의 지주 같은 역할을 하죠. 제가 주장을 맡으면서 정미 언니한테 가장 많이 물어보고 기댔어요. 제 생각에도 정미 언니가 맏언니로서 팀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팀이 잘 돌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 말에 더 귀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려고 했어요.

이세은

이세은은 지난 두 시즌 동안 인천현대제철의 주장 완장을 차고 뛰었다.


-작년에 주장을 맡고 나서 차지한 우승은 더 특별했을 것 같아요.

8년 중에 가장 특별했던 시즌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이에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승부차기로 극적인 승리를 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주장을 맡으면서 책임감이 막중했던 해이기도 하고요.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어요. 그게 경기에도 드러나다 보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파이터적인 모습도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요. 감독님도 많이 믿어주셨던 것 같아요. 리그 우승은 비교적 수월해서 '이렇게만 축구하면 10년도 더 하겠다' 싶었는데, 챔피언결정전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죠(웃음). 어렵게 얻은 우승컵인 만큼 기억에 많이 남아요. 개인적으로는 챔피언결정전에서 MVP도 받았고요.


-통합 4연패를 하면서 인천현대제철에 대한 기대치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요. 1위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압박감이나 1위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없나요?

감독님이 느끼시는 압박감이 아마 가장 클 거예요. 단장님도 그렇고요. 단지 WK리그 1위 자리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한국여자축구를 이끌고 가야 한다는 마음이 큰 분들이거든요. 그런 압박감이 우리 선수들한테도 자연히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계속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하지만 압박감이 큰 만큼, 챔피언이라는 자신감도 크기 때문에 괜찮아요. 감독님도 항상 얘기하시거든요. 약간의 압박감은 좋은 거라고요.


-자신감으로 압박감을 이길 수 있다는 건가요?

맞아요. 제가 WK리그 원년부터 인천현대제철에서 뛰면서 4년 연속 준우승을 경험했고, 그 다음 4년 연속 우승을 했어요. 준우승만 연속으로 할 때는 우승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던 것 같아요. 우승 DNA가 없었다고 할까요? 준우승이 계속될수록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이제 우승을 계속하니까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자신감이 탄탄해지는 것 같아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그런 얘기 있잖아요(웃음)?


-자신감이 자칫 자만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요?

아직까지 그런 자만한 모습들은 보이지 않아요. 아마 그런 꼴은 감독님이 못 두고 보실 걸요(웃음)? 책임감을 가지고 더 노력해야 하죠. 선수 개개인으로서도 프로페셔널하게 행동하고, 팀 자체도 프로페셔널한 팀이 되고자 해요.


-주장으로서 힘든 점은 없나요?

사실 요즘 들어 '주장은 내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학창시절에도 주장을 맡아봤지만, 할수록 배울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제 부족함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감독님은 왜 제게 주장을 맡기셨을까요? 나중에 한 번 물어봐주세요(웃음). 주장이면 다른 선수들을 두루두루 챙기고, 앞장서고, 나서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제 성격상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고 제 일만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언제 어디서나 튀지 않는 것을 추구해요. 선수들 입장에서는 불만도 많을 것 같아요. 더 소통하고 다가서고 해야 하는데...


-튀지 않으려 한다는 건 플레이스타일에도 드러나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아요. 튀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뛰는 건 아니지만, 욕심을 내거나 뭔가를 쟁취하려고 하면서 뛰지는 않거든요. '남한테 피해주지 말자' 그게 최우선이에요. 저한테는 저로 인해서 다른 선수들이 힘들어지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에요. 그냥 제가 필요한 존재라는 걸 누군가 알아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요. 이번 시즌 중간에 경기에 못나간 적이 있는데, 그 때 팬분들이 '이세은이 없는 게 티가 많이 난다. 가운데서 중심 잡아줄 선수가 없다. 이세은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걸 듣고 힘이 정말 많이 됐어요.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했어요.

이세은20161107

20대의 마지막 한 해는 그 동안과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 이세은의 목표다.


-축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했어요. 제가 하겠다고 지원한 거예요. 가정통신문 보고요. 그전까지 특별히 축구를 해본적은 없었어요. 그냥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였죠. 운동도 좋아하고, 달리기도 빠르고 하니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어요. 엄마한테 관심도 좀 받고 싶었고요. 좀 방목 스타일로 키우셨거든요(웃음). 축구 시작하고는 너무 재미있어서 밤 11시까지 공차고 그랬어요. 중학교 가서 점점 훈련이 힘들어지면서는 그만둔다고 찡얼거리기도 했지만요. 재미와 힘듦이 공존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요.


-20대 초반까지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어요. 국가대표팀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솔직히 말하면 욕심이 없어요. 물론 대표팀에 선발된다면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욕심내지는 않아요. 대표팀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성공을 대하는 입장의 차이인 것 같아요. 친구한테 장난 섞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나는 가늘고 길게 갈 거야'라고요(웃음). 그런데 친구가 '그래도 한 번은 반짝여야 하지 않겠어?' 그러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대표팀에 들어가는 걸 성공으로 보지만, 저는 좀 달라요. 소속팀 안에서 오랫동안 인정받고, 박수 받으며 떠나는 게 성공이라 생각해요.


-인천현대제철에는 대표팀을 오가는 선수들이 많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 자극이 되지 않나요?

대표팀에 뽑히는 다른 선수들을 부러워하거나 하면서 감정소비를 할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2011년에 마지막으로 대표팀에 뽑히고 나서 한동안은 다시 대표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정말 부족했어요. 지금보다 못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부끄럽기도 해요. 대표팀에 대한 미련 때문에 제가 갖고 가야할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대표팀에 가는 선수들을 보면서 잘하라고 이야기하고,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 한국여자축구선수로서 함께 기쁘고,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에요.


-20대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어요. 특별한 새해 계획이 있나요?

빠른 89년생이라 88년생 친구들한테 '(20대가) 아직 1년 남았다'고 우기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는 게 나이든 증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어쨌든 얼마 남지 않은 20대니까, 그동안의 나와는 다른 삶을 즐겨보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잘될지 모르겠어요. 열심히 목표 세우는 시간이에요. 다이어리에 매번 써놓긴 하는데 숨겨놓거든요. 못 지킬까봐...(웃음) 내년에는 애들한테 좀 더 다가가서 즐겁게 해보고 싶어요.


-축구인생만 16년이 지났는데, 후회는 없나요?

벌써 16년을 했네요. 16년이면 도가 터야 되는데 아직 먼 것 같아요(웃음). 후회라기보다는 축구선수가 아닌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궁금하긴 해요. 대학은 갈수 있었을까, 뭘 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것들이요. 후회는 안 해요. 축구하면서 얻은 것들이 많으니까 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던 것들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운동하고, 밥 먹고, 자고, 하는 반복적인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니까요. 뭐든 장단점이 있잖아요. 축구를 하지 않았어도 뭔가 재미있는 걸 찾아서 하지 않았을까요? 막연하긴 하지만 아마도 평범한 20대 여성으로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튀는 거 싫어하는...(웃음)


-은퇴 이후에 대한 계획도 있나요?

요새 자다가도 깨서 '나 뭐하지?' 그래요(웃음). 은퇴 시기는 매일매일 생각이 바뀌기 때문에 뭐라고 딱 정해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쨌든 박수 받을 때 떠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지도자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는데, 과연 내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자연히 따라와요. 선수 이상의 열정을 뽑아내야 하는 게 지도자잖아요. 고민이 많아요. 원래 그래요. 20대 초반부터 은퇴 후 생각을 했어요. 어렸을 때는 계획표에다 저를 가둬두고, 계획대로 못하면 스스로 못 견디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이제는 많이 프리해졌는데, 나이가 나이인 만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일단 정해놓은 건 하나에요. 은퇴하고 나면 1년 정도는 그냥 여행 다니면서 쉬고 싶어요(웃음).



글=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